이용악의 고향 '북쪽'

    입력 : 2018.03.01 15:55

    [books 레터]

    지금은 사라진 서울 인사동 주점 '평화만들기' 한쪽 벽에는 누군가 취기(醉氣)를 실어 휘갈겨 쓴 시가 적혀 있었습니다. '북쪽은 고향/ 그 북쪽은 여인이 팔려간 나라/ 머언 산맥에 바람이 얼어붙을 때/ 다시 풀릴 때/ 시름 많은 북쪽 하늘에/ 마음은 눈감을 줄 모르다'. 월북 시인 이용악(1914~1971)이 1936년 쓴 시 '북쪽'입니다. 북쪽(함경도)이 고향인 사내에게 '월북 시인'이라 해야 할지는 모르겠네요. 술집 벽에 글씨를 쓴 이는 시인 김지하라고 주인에게서 들었습니다.

    30년 전 백석·오장환과 함께 해금되어 '이용악 시전집'(창비)이 나왔을 때 탐독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알룩조개에 입 맞추며 자랐나/ 눈이 바다처럼 푸를뿐더러 까무스레한 네 얼골/ 가시내야/ 나는 발을 얼구며/ 무쇠 다리를 건너온/ 함경도 사내'('전라도 가시내'). 그의 시에서 짙은 토속성과 함부로 밟히지 않겠다는 결기를 느꼈습니다.

    최근 새로 '이용악 시전집'(문학과지성사)이 나왔습니다. 1988년판은 월북 이전까지 시를 담았고 이번 전집은 북한에서 쓴 시까지 망라했습니다. 북쪽에서 쓴 시를 읽으며 연민과 분노가 함께 일었습니다. '원쑤의 가슴팍에 땅크를 굴리자' '당 중앙을 사수하리' '오직 수령의 두리에 뭉쳐' 같은 시를 과연 이용악이 썼다니요. 시인의 영혼이 겪었을 고통과 살아야 하는 생존의 무게 앞에서 '북쪽'은 그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서글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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