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앞서간 페미니스트...'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

  • 뉴시스

    입력 : 2018.03.08 09:12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 책
    "공부를 하면 무엇을 전문하겠어?/ 문학이요./ 문학? 좋지./ 어렵지요?/ 어렵기야 어렵지만 잘만 하면 좋지. 영애는 독서를 많이 해서 문학을 하면 좋을 터이야. 사람은 개인적으로 사는 동시에 사회적으로 사는 것이 사는 맛이 있으니까. 좋은 창작을 발표하여 사회적으로 한 사람이 된다면 더 기쁜 것이 없는 것이야."('어머니와 딸'에서·80쪽)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로 꼽히는 나혜석(1896~1948)이 쓴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이 민음사에서 출간됐다.

    나혜석은 1914년 조선인 유학생 잡지 '학지광'에 '이상적 부인'을 발표했고, 1918년에는 도쿄 여자유학생 친목회 잡지 '여자계'에 단편소설 '경희'를 발표했다. 이후 논설과 문학을 넘나드는 문필 활동을 통해 전통적인 여성관에 도전했다. 1919년 3·1운동에 여성들의 참여를 조직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이듬해 변호사 김우영과 결혼한 후 1921년 만삭의 몸으로 국내 최초로 유화 개인전을 열며 화가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1923년에는 모성 신화를 부정하는 논설 '모 된 감상기'를 발표했다. 1927년 남편과 세계 여행을 떠나 파리에서 그림 공부를 했는데, 그때 만난 최린과의 연애 사건이 문제가 되어 35세에 이혼했다. 이혼 이후 생활고를 겪으면서도 그림과 글을 놓지 않았다. 1948년 서울 시립자제원에서 무연고 행려병자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그녀는 불꽃같은 인생을 살다 갔다.

    "아아, 남성은 평시 무사할 때는 여성이 바치는 애정을 충분히 향락하면서 한 번 법률이라든가 체면이라는 형식적 속박을 받으면 어제까지의 방자하고 향락하던 자기 몸을 돌이켜 금일의 군자가 되어 점잔을 빼는 비겁자요, 횡포자가 아닌가. 우리 여성은 모두 일어나 남성을 저주하고자 하노라."(173쪽)

    그녀는 글쓰기를 통해 자기 존재를 증명하고, 여성들과 소통하며, 여성에게 억압적인 사회와 맞서 싸우려 했다.

    책은 총 5부로 구성됐다. 1부에는 소설을, 나머지 부에는 논설·수필·인터뷰·대담을 가려 뽑았다.

    1부에는 나혜석의 가장 대표적 단편 소설인 '경희'와 나혜석의 문학관을 파악하기에 유용한 단편 '어머니와 딸'을 실었다. 특히 '경희'는 최초의 한국 근대 여성 문학으로, 여성 지식인으로서 봉건적 가부장제와 인습에 어떻게 맞서 싸워야 할지 고민하는 나혜석의 모습이 담겨 있다.

    2부에는 나혜석이 여성의 연애와 결혼에 대해 쓴 글을 가려 뽑았다. 가장 대표적인 페미니즘 논설인 '이상적 부인'은 '현모양처는 그야말로 세속적 가치에 그칠 뿐 결코 이상적인 여성의 모델이 될 수 없으며, 온양유순이라는 개념 또한 여성을 노예로 만들기 위해 사용된 것'이라는 주장이 담겨 있는 글이다.

    나혜석이 김우영과 결혼 생활 중에 발표한 '부처(夫妻) 간의 문답'에는 남편 김우영과의 대화를 공개했다. 또한 인터뷰 '우애 결혼, 시험 결혼'에서는 이혼의 비극을 막기 위해 시험결혼이 필요하며, 시험결혼 기간 동안에는 산아제한이 필요하다는 전위적인 결혼을 소개하고 있다.

    3부에는 나혜석이 이혼 이후에 발표한 조선의 가부장제를 비판하는 '이혼고백장'과 여성에게만 정조를 강요하는 남성 이기주의를 고발하는 '신생활에 들면서'를 실었다.

    4부에는 나혜석의 페미니즘 육아관을 엿볼 수 있는 기존의 모성 통념에 반하는 글을 모았다. 5부에는 나혜석의 정치의식을 담은 글과 근대 신여성의 직업관에 대한 글이 담겼다.

    각 부의 말미에는 나혜석·이광수·김기진·김억, 총 4명의 문인이 1930년대 당시 미혼 남녀들이 결혼을 늦게 하는 풍조를 비평하는 '만혼 타개 좌담회'가 부록으로 실렸다.

    근대 여성 지식인의 삶과 사상을 연구하고 있는 장영은 성균관대학교 한국학연계전공 초빙교수가 시대상을 생생하게 전하는 해설을 덧붙여 이해를 도왔다. 336쪽,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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