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주 "이순신 장군은 한국 대표하는 아버지상"

  • 뉴시스

    입력 : 2018.03.09 09:09

    소설가 정찬주
    ■'이순신의 7년' 완간 기념 간담회
    "신사임당이 한국의 대표 어머니상으로 불리는데, '한국 아버지상'을 하면 떠올리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아요. 이순신 장군이야말로 한국을 대표하는 아버지상이 아닌가 싶습니다."

    소설가 정찬주(65)씨는 8일 서울 광화문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대하역사소설 '이순신의 7년'(전 7권·작가정신) 완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충무공 이순신(1545∼1598)이 1591년 전라 좌수사로 부임해 1598년 노량해전에서 최후를 맞기까지 '인간 이순신의 삶과 임진왜란 7년 전쟁'을 새롭게 조명한 소설이다.이 소설은 2015년 1월부터 2017년까지 전남도청 홈페이지에 연재할 당시부터 독자들의 뜨거운 성원을 받았다.

    정찬주 작가가 그려낸 이순신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완전무결한 '영웅 이순신'이 아니라 백성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인간 이순신'이다.

    뛰어난 전략과 용맹함 이면의,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불면의 밤을 보내는 인간 이순신이 입체적으로 그려냈다.

    정 작가는 "이순신 장군은 부하 장졸들과 허심탄회하게 막걸리를 마시고, 아주 낮은 계급의 부하가 상을 당하면 직접 문상을 갔다"고 말했다.

    "물론 어머님이 훌륭하셨지만, 효심이 지극했습니다. 그리고 이순신 장군의 시가 얼마나 좋습니까. 한국의 아버지상으로서 이순신을 작가가 생각해볼 부분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이순신은 소설 속에서 충청도 아산 사투리로 이야기하고, 어머니를 모시지 못하는 변방의 장수로서 회한에 젖는다.

    그는 "우리나라 역사소설에서 주인공이 권력과 신분의 상징인 계급 언어 대신 고향 사투리로 시종일관 살아가는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소설은 리얼리즘 관점을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인물의 언어를 그대로 쓰면 사투리를 쓸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당시에 벼슬아치들은 사투리를 쓰지 않고 계급언어를 썼어요. 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계급언어를 쓰지 않았습니다. 본인이 유년기를 보낸 충청남도 아산의 사투리를 썼습니다. 저는 그것을 백성과 함께 하는 마음으로 의미를 부여했어요."

    소설은 당시 군 체계, 화살의 종류와 쓰임새, 무기나 장비들, 거북선 건조 과정, 전술 변화 등 전쟁과 관련된 것을 비롯해 의식주 문화를 묘사했다. 여러 지방, 특히 호남 사투리와 음식과 풍속에 관한 방대한 이야기도 담겼다.

    아울러 작가는 '임진왜란'이라는 거시적 사건 뒤에 자리한, 미시적 삶과 일상까지 조명했다.

    정 작가는 "예전에는 처가살이가 부끄러운 게 아니었다"며 "이순신은 21살의 나이에 2살 연하의 여자와 결혼했다. 이순신의 장인 방진은 무과 출신으로, 보성 군수를 지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문과 시험을 공부했던 그는 장인이 군수로 부임해간 보성에서 무과의 길로 결심하지 않았나 싶다"며 "이순신은 왜구의 노략질로 인한 남해안 촌민들의 처참한 모습을 봤다"고 했다.

    "문관으로 입신해 임금의 신하가 되기보다는 무장이 되어 변방 백성의 신하가 되기로 맹세합니다. 왜군들의 만행들을 보고 백성들을 지키기로 한 것입니다. 32살이라는 굉장히 늦은 나이에 무과에 급제했어요."

    임진왜란은 역사적 외침의 피해가 막대한 참혹한 전쟁이었다. 국토 전체가 황폐화돼 경작지는 절반 이상으로 줄었으며, 수많은 백성들이 일본에 포로로 잡혀 갔을 뿐만 아니라 전쟁 중에 약탈되거나 손실된 문화재도 상당했다.

    군사력의 절대적 열세에도 조선 수군의 승리로 막을 내린 임진왜란은 5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열강들의 알력 다툼에서 자유롭지 못한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정 작가는 "한산대첩보다 명량대첩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며 "한산대첩은 어느정도 전력이 갖춰진 상태에서 거둔 승리였는데, 명량대첩은 전력으로 보면 게임이 안되는 싸움이었다. 우리 장졸들이 잘 싸워서 이기기도 했지만, 이것은 천운이었다"고 평가했다.

    작가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사료에 따라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몸을 사리지 않고 분투한 백성들에 주목했다. 명량 해전을 앞두고 절체절명의 위기에 맞닥뜨린 조선 수군이 기사회생하는 결정적 역할을 했음을 보여줬다.

    선비, 장수와 의병, 승려, 이름 없는 민초들의 자취를 샅샅이 발굴해 그동안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던 이들의 활약상을 하나하나 복원해 써내려갔다.

    이를 위해 직접 발로 현장을 누비고, 역사서는 물론 문중의 족보까지 샅샅이 뒤져가며 철저히 고증했다. 하지만 이순신과 관련된 드라마나 소설 등은 보지 않았다.

    "저도 모르게 무의식으로 입력이 되어서 똑같이 쓰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드라마나 영화를 보지 않았습니다. 표절 부분은 2차적인 문제고, 더 근본적인 이유는 작가적 상상력을 구속할 것 같은 우려때문이었습니다."

    정 작가는 "한 불교 매체에 '따뜻한 슬픔'이라는 소설을 연재 중에 있다"며 "이 제목은 우연히 나왔다. 자비에 대해서 한 대학 교수와 대화하다가 자비를 의역하면 '따뜻한 슬픔'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젊었을 때는 감히 생각하지 못했는데요. 작가가 70세가 넘으면 인생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고 하잖아요. 좀 크게 잡고 종교의 본질이 탐구해보고 싶었어요. 앞으로도 끊임없이 좋은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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