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사랑한 다윈이 나를 구원"… 과학에서 찾은 생명의 溫氣

    입력 : 2018.03.09 23:45

    '의학계 계관시인' 올리버 색스, 암으로 세상 뜨기 2주 전 구상… 마지막 에세이집 국내 출간
    진화론·환자 임상 사례 등서 인간 존재의 위대함 길어내

    '의식의 강'
    의식의 강|올리버 색스 지음|양병찬 옮김|알마|252쪽|1만6500원

    다윈에 대해 쓰면서 '종의 기원'보다 꽃에 날아드는 벌을 연구한 책 '난초'에 주목한 의학자가 있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런던 집 정원에 만개한 목련꽃에 기어들어가는 딱정벌레를 보고 있는 이 의학자에게 설명해 주었다. "목련나무는 아주 오래된 꽃식물이란다. 거의 1억년 전에 나타났는데, 그때는 벌 같은 곤충이 아직 진화하지 않았던 거야. 벌이 없으니 색깔과 향기도 필요 없었고, 그냥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던 딱정벌레에게 꽃가루 배달을 맡겼단다. 벌과 나비와 (색깔과 향기가 있는) 꽃들은 아직 때가 되지 않아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어. 그들은 수백만년에 걸쳐 아주 조금씩 진화할 예정이었거든."

    '벌과 나비가 없고, 꽃의 향기와 색깔이 없었던 세상'이라는 아이디어가 그에게 경외감을 심어줬다. '영겁의 세월'이라는 개념과 '하나하나는 작고 지향성이 없지만, 축적되면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는 변화의 힘'은 중독성이 있었다. 노년의 그는 "이 지식은 내 마음속에 뿌리를 내림으로써 자연을 내 고향처럼 느끼게 해주고, 나 자신만의 고유한 생물학적 의미를 느끼게 해준다"고 적었다.

    올리버 색스
    /알마
    '의학계의 계관시인'으로 불리는 신경의학자 올리버 색스(1933~2015·작은 사진)의 마지막 에세이집이 출간됐다. 안암(眼癌)이 간으로 전이돼 숨지기 2주 전 그간 발표한 글 중 열 편을 직접 추렸다. 신경과 전문의로서 마주한 임상 사례를 휴머니즘을 담아 바라본 대표작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1985)는 국내에서 3만부 넘게 팔렸다. 이번 책에서 색스는 다윈, 프로이트 등 어린 날부터 함께한 마음 속 동반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자신의 경험과 엮어 따스하게 풀어나간다.

    다윈을 흠모했던 프로이트에게 '기억'이란 진화와 마찬가지로 '본질적으로 역동적이고 변화무쌍하고 평생 동안 재조직되는 과정'이었다. 색스는 프로이트의 이론을 설명하며 말한다. "출처에 무관심한 우리의 뇌는 '우리가 읽고 들은 것'과 '타인들이 말하고 생각하고 쓰고 그린 것'을 통합하여, 마치 1차 기억인 것처럼 강렬하고 풍부하게 만든다. 덕분에 우리는 타인의 눈과 귀로 보고 들을 수 있고, 타인의 마음속에 들어갈 수도 있으며, 예술, 과학, 종교가 포함된 문화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134쪽)

    색스는 일생 편두통 발작에 시달렸다. 동성애자였다. 어린 날 꽃과 벌의 진화를 가르쳐주던 어머니는 아들에게 "넌 태어나지 말았어야 해"라고 했다. 환자의 병증(病症)에 대한 색스의 공감 능력은 가족으로부터도 이해받지 못했던 아픔의 결과물이다. 이 책에서 그는 정체불명의 질병으로 40년간 앓으면서도 지적 에너지와 창의력이 수그러들지 않았던 다윈의 일화를 소개한다. 이는 곧 자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뇌와 정신 활동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들려줘 독자의 사랑을 받은 올리버 색스는“작고 의미 없는 활동이라도 계속 쌓이면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된다”고 했다.
    “인간의 의식은 강물처럼 흘러간다. 그러나 지각의 순간이 모여 의식을 이룬다.” 뇌와 정신 활동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들려줘 독자의 사랑을 받은 올리버 색스는“작고 의미 없는 활동이라도 계속 쌓이면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된다”고 했다. /게티이미지 코리아
    2015년 2월 간으로 전이된 암세포 제거 수술을 받은 색스는 극심한 통증을 동반한 수면 발작을 겪었다. 그러나 몸을 일으켜 자서전 교정쇄를 수정했다. "열흘째 되던 날 나는 아침에 평소처럼 공포감을 느끼며 한고비를 넘겼지만, 저녁때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것은 전혀 뜻밖의 유쾌한 일이었다."(173쪽)

    신경증을 앓지 않아도, 암에 걸리지 않아도 살다 보면 나라는 존재가 '조물주의 불량품'인 것만 같은 절망감이 찾아올 때가 있다. 그런 순간에 이 책과 함께 색스가 시한부 선고를 받고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나의 인생' 중 마지막 부분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나는 두렵지 않은 척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가장 지배적인 감정은 일종의 고마움이다. (…) 무엇보다도, 나는 이 아름다운 행성에서 지각(知覺) 있는 존재, 생각하는 동물이었다. 그 자체가 엄청난 특권이자 모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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