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쿠데타, 침략의 이념이 되다

    입력 : 2018.03.09 23:58

    '쇼와 유신'
    쇼와 유신|한상일 지음|까치|344쪽|2만원

    1936년 2월 26일 오전 5시. 도쿄 시내 곳곳에서 총성이 울렸다. 49년 만의 폭설이 내린 어두운 새벽이었다. '혁명군' 1500명을 이끈 청년 장교들은 총리 관저, 대신 숙소, 군 고위층 자택을 급습해 주요 각료를 살해했다. 조선 총독을 지낸 78세 사이토 마코토 대신의 시신에는 총알 47발이 박혔다. '2·26 사건'으로 불리는 이날 쿠데타의 핵심 세력은 위관급 장교들. 이들은 '존황토간(尊皇討奸·천황을 높이고 간신을 토벌)'으로 '쇼와유신(昭和維新)'을 이뤄야 한다고 천명했다.

    쿠데타는 성공한 듯 보였다. 육군성·참모본부·경시청 등 주요 기관을 장악하고 계엄사령부를 구성했다. 덴노(天皇)는 당연히 쿠데타를 인정할 것으로 여겼다. 착각이었다. 히로히토 덴노는 자신을 보좌하던 측근 대신들의 살해를 용납하지 않았다. '혁명군'은 나흘 만에 '반란군'으로 전락했다. 핵심 주역은 처형되었다.

    쿠데타는 실패했지만 이들이 꿈꾼 시대는 그때부터 시작된다. 2·26 사건을 기점으로 일본은 군부가 중심이 되는 군국주의 국가로 달려갔다. 이들이 주창한 일본주의는 이후 대외 침략의 이념적 기틀로 실현된다. 45년간 일본 정치를 전공한 저자(국민대 명예교수)는 "쇼와 유신의 목표였던 군국주의 국가 총동원 체제를 이루었다는 점에서 실패한 쿠데타는 역설적으로 성공을 거두었다"고 말한다.

    쇼와 유신 이념을 설계한 기타 잇키, 일본주의자 오카와 슈메이, 쿠데타를 디자인한 니시다 미쓰기 등 핵심 세력의 사상적 토대를 자세히 설명한다. 전사(前史)로서 다이쇼(大正) 시기의 정치·경제 상황을 먼저 서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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