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후원한 연해주 독립운동가 '페치카 최'를 아십니까

    입력 : 2018.03.12 01:28

    독립운동사 연구 박환 수원대 교수, 최재형 일대기 담은 평전 출간

    박환 교수
    노비 출신의 불법월경민(不法越境民)에서 임시정부의 재무·외무장관 선임까지. 20세기 초 해외 민족운동의 최대 거점이었던 연해주에서 '한인(韓人)의 대부(代父)'로 불렸던 독립운동가 최재형(崔在亨·1860~1920)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담은 '페치카 최재형'(도서출판 선인)이 출간됐다.

    중진 독립운동사 연구자 박환〈작은 사진〉 수원대 교수가 쓴 책은 함경도 경흥에서 머슴의 아들로 태어나 일가족이 두만강 건너 도망한 후 농사일과 선원 생활을 거쳐 장사로 기반을 닦은 초년기, 한인 마을 중심지 연추에 자리 잡은 뒤 사업을 통해 재산을 축적하는 젊은 시절, 한인 자치기관 책임자인 도헌(都憲)이 돼 국권회복운동과 독립운동 지도자로 우뚝 서는 장년기, 연해주에 출병(出兵)한 일본군에 의해 순국(殉國)하는 노년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1980년대부터 구(舊)소련 지역의 한국 독립운동을 연구해 온 박 교수가 여러 차례 현지답사와 최재형 자녀 인터뷰를 통해 밝혀낸 자료와 사실을 바탕으로 했으며 그동안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최재형의 첫 본격 평전이다.

    ‘연해주 한인의 대부’로 불린 독립운동가 최재형.
    ‘연해주 한인의 대부’로 불린 독립운동가 최재형. /도서출판 선인

    책 제목은 연해주 한인 사회를 물심양면 지원해 동포들로부터 '페치카(난로) 최'라고 불렸던 최재형의 애칭에서 따왔다. 그는 곳곳의 한인 마을에 학교를 세웠고 우수한 학생을 러시아 주요 도시로 유학 보냈으며 농장을 만들어 한인들의 경제력 향상에 힘썼다.

    최재형은 1905년 연추로 피신한 대한제국 간도관리사 이범윤을 지원하면서 국권회복운동에 뛰어들었다. 1908년 연해주 한인과 망명 의병이 조직한 동의회(同義會) 총재로 추대됐고, 동의회 발기인인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을 지원했다. 안중근이 동지들과 단지(斷指)동맹을 결성하고 사격연습을 한 곳이 최재형 소유 건물이었다. 최재형은 1911년 12월 연해주에서 만들어진 권업회 총재,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발간된 '대동공보' '대양보' 사장으로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그가 3·1운동 후 연해주의 대한국민의회 외교부장, 상해 임시정부의 재무총장에 선임된 것은 독립운동가로서 그의 비중을 보여준다. 그는 상해로 취임하지는 않았다. 1920년 4월 연해주 일본인 보호를 내걸고 파병된 일본군이 가장 먼저 최재형을 살해한 것은 일제가 그를 눈엣가시처럼 여기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최재형이 일본군에 붙잡힌 우수리스크 집은 연해주를 방문하는 한국인들이 찾는 곳이 됐고 한국 재외동포재단이 매입해 기념관으로 조성하고 있다.

    평전은 특히 '사업가 최재형'에 주목한다. 사업 수완이 뛰어났던 그는 건설·군납·무역·임대업 등으로 부(富)를 모았고 이를 동포와 모국을 위해 아낌없이 썼다. 그래서 말년에는 재산이 바닥난 상태였고 그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뒤 자손들은 극심한 어려움을 겪었다. 박환 교수는 "최재형은 한국에 아무 연고도 없지만 그의 삶에 감명받은 중소기업인들이 기념사업회를 만들어 꾸려가고 있다"고 전했다.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