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보다 보는 재미… "우리도 책이에요"

    입력 : 2018.03.13 02:03

    ['보는 즐거움' 강조한 신개념 책들]

    냉장고에 붙이고 꽃잎처럼 펼치고… 손으로 만드는 수제책 공방 북적
    인테리어 소품으로도 인기 높아

    장미꽃은 겹잎이며, 입술 모양으로 벌어진다. 두툼한 겉잎을 넘기면 엷은 분홍빛 속살이 드러난다. 이 비밀스러운 40쪽의 낱장은 장미의 물성이자 속성이며, 추리만화책 '장미의 집'(안민희)의 형태. "장미정원이 딸린 집에서 일어난 범죄 이야기를 꽃잎을 한 장씩 넘겨가며 결말에 접근하는 모습으로 구현했다. 이건 오브제(Objet), 즉 '물건'으로서의 책이다."

    책 실험집단 ‘부흐’와 만화잡지 ‘쾅’이 함께 만든 수제 만화책 ‘기억 파편의 모음’(최재훈). 이들은 “다양한 인쇄·제본 방식을 통해 새로운 물성의 책을 만들고자 했다”고 주장한다.
    책 실험집단 ‘부흐’와 만화잡지 ‘쾅’이 함께 만든 수제 만화책 ‘기억 파편의 모음’(최재훈). 이들은 “다양한 인쇄·제본 방식을 통해 새로운 물성의 책을 만들고자 했다”고 주장한다. /부흐

    책 실험집단 '부흐(Buch·책)'는 최근 만화잡지 '쾅'과 협업해 수제 만화책 프로젝트 '쿠흐'를 선보였다. '장미의 집'뿐 아니라 만화가 최재훈의 '기억 파편의 모음'은 사각·사다리꼴 등 각기 다른 모양의 종이를 실로 느슨하게 연결한 형태다. 실을 조이면 묶음이 되고, 풀면 흩어진 낱개의 종잇장이 되는 책. '기억상실'이라는 줄거리를 형상화한 것이다. 2016년부터 부흐를 시작한 김예나(36)씨는 "출판사를 운영하다 책 제작의 전과정에 관여하면서 새로운 책을 기획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면서 "콘텐츠를 드러낼 수 있는 책 본연의 물성을 강조하는 책을 만들어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다음 달 '쾅'과의 새 프로젝트가 예정돼 있고, 5월엔 식당 '보울델리'와 협업해 냉장고에 붙여놓고 볼 수 있는 신개념 요리책을 선보일 계획이다.

    비디오테이프가 아니라 책이다. 영화 ‘구니스’ 촬영기를 다룬 ‘구니스와 함께한 3주’.
    비디오테이프가 아니라 책이다. 영화 ‘구니스’ 촬영기를 다룬 ‘구니스와 함께한 3주’. /별책부록
    '읽는 책' 대신 '보는 책'. 국내의 경우 독립출판 쪽에서 활발하다. 미국 모험영화 '구니스'(1985)의 촬영현장 관찰기를 다룬 책 '구니스와 함께한 3주'는 책 표지가 아예 비디오테이프다. 비디오테이프 제조회사 SKC의 협조를 얻어 실제 중고 비디오테이프를 스캔해 만든 것이다. 앞면뿐 아니라 뒷면도 마찬가지여서, 펼쳐보기 전까지는 책인지 비디오테이프인지 알 방도가 없다. 지난해 12월 책을 펴낸 1인출판사 프레임퍼페이지 대표 오세범(31)씨는 "책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제목·저자명을 지우고 책이 담고 있는 내용(비디오)만을 표면화했다"면서 "책 내용만큼 테이블에 놓이거나 책장에 꽂혔을 때 주는 시각적 즐거움도 중요하다고 봤다"고 했다.

    물건으로서의 책이 각광받으면서 직접 책을 수제작 하는 '북바인딩' '북아트클래스' 등의 일반인 참여도 활발해지는 추세다. 책공방 '끌북'을 운영하는 북아티스트 최수연(32)씨는 "표지를 쇠로 만들 수도 있고 삼각형이나 별, 가운데 뚫린 터널 모양 등 재료나 형태를 국한하지 않아 '나만의 책'이라는 개별성을 극대화한다"면서 "4주 코스나 원데이 클래스 등 2015년 시작 당시보다 수강생도 2배 이상 늘었다"고 전했다.

    책은 인테리어 소품으로도 각광받고 있다. 주로 영국 문고판 '펭귄북스' 시리즈 같은 1910~1970년대 영미권에서 출판된 오리지널 빈티지 서적인데, 튀지 않으면서도 지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훌륭한 공간 장식품이 되기 때문이다. 벽장 전면을 장식할 수 있도록 100권이나 50권씩 묶어 판매하거나, 색상별로 배합해 팔기도 한다. 앤티크 전문 소품점 올드시티 관계자는 "2012년부터 판매하고 있는데 카페나 호텔·레스토랑 등에서 특히 주문이 많다"며 "클래식하면서 아늑한 분위기를 내기 위해 책을 찾는 사람이 꾸준히 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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