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편의점… 소소한 삶을 예찬하다

    입력 : 2018.03.13 02:04

    일상을 詩로 쓴 김광규·이재무, 같은 듯 다른 작품 選集으로 엮어

    김광규, 이재무
    김광규, 이재무
    올해로 희수(喜壽)를 맞은 김광규 시인이 시선집 '안개의 나라'(문학과지성사)를 냈다. 이순(耳順)에 접어든 이재무 시인도 시선집 '얼굴'(천년의시작)을 출간했다. '4·19세대' 김광규는 시를 쓴 지 40년이 지났고, '58년 개띠' 이재무는 시력(詩歷) 35년을 맞았다. 똑같이 시집 11권을 냈다. 일상의 경험을 쉬운 언어로 노래한 서정 시인이란 공통점이 있다.

    김광규는 한국 시에 '일상시(日常詩)'란 용어를 뿌리내리게 한 것으로 이름이 높다. 평범한 소시민의 일상을 통해 진솔한 삶의 고백을 들려주고, 현실 비판과 존재의 근원 탐구도 품어왔다. 초기 시 '안개의 나라'는 80년대 현실을 예리하게 풍자한 걸작으로 꼽힌다. '언제나 안개가 짙은/ 안개의 나라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중략)/안개의 나라에서는 그러므로/ 보려고 하지 말고/ 들어야 한다/ 듣지 않으면 살 수 없으므로/ 귀는 자꾸 커진다/ 하얀 안개의 귀를 가진/ 토끼 같은 사람들이 / 안개의 나라에 산다.' 권력이 통제한 공영 방송을 보지 말고 시중에 떠도는 소문에 귀를 기울인 당시 시민 사회를 우화적으로 그려냈다.

    요즘 서울 광화문 교보생명 빌딩의 '글판'은 김광규의 시 '오래된 물음' 중 끝 부분이다. '아이들의 팽팽한 마음/ 튀어오르는 몸/ 그 샘솟는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이냐.' 시행의 앞부분은 '인간의 어두운 자궁에서 태어난/ 아기의 고운 미소는 우리를/ 더욱 당황하게 만들지 않느냐'라면서 신생을 예찬했다. 어두운 땅속에서 솟은 식물이 햇빛을 찾듯이 새 아기가 태어나고, 봄이 되돌아온다는 뜻이다.

    이재무는 소탈하게 일상생활을 이야기하는 시를 써왔다. 고향(충남 부여 증각골) 추억과 서울 생활 35년의 묘사가 초기 시 세계를 지탱한 양대 기둥이었다. 가족과 공동체를 향한 그리움을 음식을 통해 표현했다.

    시 '위대한 식사'는 유년기에 겪은 가난한 농가(農家)의 풍경을 정겨우면서도 슬프게 그려냈다. '마당가 매캐한 모깃불 피어오르는/ 다 늦은 저녁 멍석 위 둥근 밥상/(중략)/베어 문 풋고추의 독한,/ 까닭 모를 설움으로/ 능선처럼 불룩해진 배.' 반면 도시의 편의점에서 홀로 밥 먹으며 쓴 시 '길 위의 식사'는 팍팍한 서울살이를 그려낸다. '가축이 사료를 삼키듯/ 선 채로 혼자서 허겁지겁 먹는 밥이다/(중략)/ 울컥, 몸 안쪽에서 비릿한 설움 치밀어 올라오는 밥이다/ 피가 도는 밥이 아니라 으스스, 몸에 한기가 드는 밥이다.'

    최근 들어 이재무의 시 세계는 돌의 풍화(風化)를 통해 평정과 긍정을 노래하는 쪽으로 이동해왔다. 황소를 맑은 호수에 비유한 시 '걸어 다니는 호수'가 대표작으로 꼽힌다.

    '소가 눈 들어 앞산을 바라보니/ 앞산이 호수에 잠긴다/(중략)/소가 끔벅, 하고 눈을 감았다 뜨니/ 산이 눈을 빠져나오고.' 시인은 소처럼 '느리게 걸어 다니는 호수'가 되고 싶다고 노래했다.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