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경의 일상시화] 시인은 묻고 또 묻는 사람

  • 유희경 시인·시집서점 주인

    입력 : 2018.03.31 00:22

    파블로 네루다 '질문의 책'

    유희경 시인·시집서점 주인
    유희경 시인·시집서점 주인
    "어떤 음악을 즐겨 들으세요? 어떤 색을 좋아하시나요? 요즘 기분은 어때요? 우울한가요, 아니면 즐겁나요?"

    서점에 찾아와 시집을 추천해달라고 청하는 손님들에게 나는 질문을 던진다. 무례하다 여길 법도 한데도 대부분 기꺼이 대답을 내놓는다. 그러면 다음은 내 차례다. 나는 그 대답을 단서 삼아 손님에게 적절한 시집을 찾기 위해 고심한다. 단번에 골라낼 때도 있고, 전혀 갈피를 못 잡고 마는 경우도 있다. 어느 쪽이든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 같은 목록에 의존하지 않고 개별 독자에게 어울릴 법한 시집을 골라주는 과정이라 즐겁다.

    생각해보면 시를 쓰는 일도, 시를 읽는 일도 '질문하기'와 다름없다. 시인은 '모르는 사람'이다. 일상의 '당연한 일'을 시인은 탐구한다. 세계에는 한 가지 질서만 있는 게 아니어서 시인은 다른 것을 묻고 또 감탄한다. 시를 읽는 독자는 시인의 감탄이 궁금하다. 그리고 기꺼이 세계에 대한 질문에 동참한다. 시 속에서 길을 잃고 또 찾으며 독자는 시와 한 몸이 된다. 세상에서 가장 무구하고 무해한 질문, 그것이 시의 정체다.

    '질문의 책'

    이런 질문이 있다. "나무들은 왜 그들 뿌리의 찬란함을 숨기지?" 이런 질문은 어떨까. "빗속에 서 있는 기차처럼 슬픈 게 또 있을까?" 언뜻 천진한 아이의 질문 같지만, 깊게 생각하게 만드는 이 질문들은 칠레의 국민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시 일부다. 그의 시집 '질문의 책'(문학동네)은 말 그대로 질문으로 가득한 시 74편을 싣고 있다. "바다의 중심은 어디일까?/ 왜 파도는 그리로 가지 않나?" 같은 재치 있는 질문에서부터 "죽음이라거나 영원이라고 불리는/ 공간은 어디서 끝나지?" 같은 형이상학적 질문에 이르기까지 일상을 흔들어 깨우는 물음으로 가득하다. 그 물음 앞에서 우리는 놓치고 있던 것을 생각하게 된다. 답은 중요하지 않다. 어쩌면 답 같은 건 없었는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한 번쯤 되새겨보는 것이니까. 살피고 발견하고 질문을 던지다 보면 반복돼 지루하게만 느껴지던 하루가 새로운 의미로 반짝이게 될 지 모른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질문은 마흔네 번째 시에 실려있다.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아직 내 속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 어릴 적 참 겁도 없이 묻고 또 물었는데, 한 살 한 살 나이를 더할수록 아는 척만 많아진다. 중요한 질문을 할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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