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룩시장서 샀다며 1억 경매 부친 명화… 사실은 自作

    입력 : 2018.03.31 00:26

    美 그림 위조 전문가 켄 페레니, 독학으로 그림 배워 명화 위조
    소더비 등 경매社서 거액에 팔다 FBI 덜미 잡힌 사연 회고록서 밝혀

    위작×미술시장

    위작×미술시장

    켄 페레니 지음 | 이동천 옮김
    라의눈 | 424쪽
    | 1만4000원

    '벼룩시장서 산 그림으로 3만4000파운드(약 5075만원)를 벌다.'

    1993년 2월 24일 영국 일간지 '더타임스' 1면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 미국인 관광객 켄 페레니가19세기 미국 풍경화가 마틴 존슨 히드의 걸작 '브라질의 보배' 연작 중 한 점을 브리스톨의 벼룩시장서 구매해 경매 회사 크리스티에 위탁했는데, 그 가치가 3만4000파운드나 된다는 내용. 그림은 크리스티 뉴욕 경매장에서 9만6000달러(약 1억 200만원)에 팔렸다.

    켄 페레니
    켄 페레니

    그러나 그 그림은 페레니가 '구매'한 것이 아니었다. 직접 '만든' 것이었다. 이 책은 희대의 미술품 위작(僞作) 제작자 켄 페레니(69)의 회고록이다. 이탈리아계 미국인인 그는 10대 때 고향 뉴저지에서 우연히 미술품 위조범 일당을 만나게 된다. 기술고등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베트남전 징병 신체검사에서는 부적격 판정을 받은 페레니가 번듯한 직장에 취직하리라는 희망은 없었다. 그는 위조범 일당의 화려한 생활을 동경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페레니는 그림에 재능이 있었다. "어찌 된 일인지 나는 그림이 그려진 이치를 이해할 수 있었다. 거부할 수 없는 힘이 나를 끌어당기며 나도 똑같이 그릴 수 있다고 말해주는 듯했다."(35쪽)

    그는 18세 때 독학으로 네덜란드 거장들의 작품을 모사하는 것으로 위작을 그리기 시작한다. 주말마다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서 그림을 보았고, 골동품상에서 산 옛 시대 싸구려 그림들을 뜯어보며 재료 및 기법을 분석하며 '연구'를 거듭했다. 그렇지만 최종 목표는 진정한 '예술가'가 되는 것이었다. 소설가들이 생계를 위해 야설을 쓰거나 유령 작가 노릇을 하듯 화가들도 종종 그런 유혹에 빠진다. 그러나 운명은 그를 손쉬운 돈벌이로 계속 이끌었다.

    1970년대 말 페레니는 네덜란드 그림을 버리고 미국 18~19세기 그림으로 전향한다. 친분 있는 유명 컬렉터 지미 리코가 그에게 미국 그림을 위조하라고 권한다. "지미는 미술품 딜러들에게 깊은 경멸감을 가졌다. '그들은 매춘부와 다를 바 없어. 무조건 가격표만 보고 그림을 평가하지.' 지미는 당신이 그토록 경멸하는 딜러들과 달리 그림을 진정으로 사랑했다."(208쪽)

    켄 페레니가 1994년 위조한 미국 화가 마틴 존슨 히드의 ‘브라질의 보배’ 연작 중 ‘팻 보이’. 페레니는 이 그림을 그리던 중 기법상 실수를 저질러 소더비 관계자의 의심을 받게 된다.
    켄 페레니가 1994년 위조한 미국 화가 마틴 존슨 히드의 ‘브라질의 보배’ 연작 중 ‘팻 보이’. 페레니는 이 그림을 그리던 중 기법상 실수를 저질러 소더비 관계자의 의심을 받게 된다. /라의눈

    허영 덩어리로 가득 찬 미술 시장에 대한 지미의 냉소가 이 책의 핵심 주제다. 유명세와 함께 FBI의 수사망에 오른 페레니는 위작에서 손을 떼기로 결심하고 런던으로 떠나지만 크리스티 카탈로그를 넘기다 경매 계약 조건 중 위조품 거래에 대해 "판매자나 크리스티는 경매 물품의 진위에 대해 책임이 없다"는 항목을 발견한다. '그렇다면 내 그림을 경매장에 놓아두어도 합법이라는 이야기 아닌가!' 그는 이것이 다시 비즈니스에 뛰어들라는 초대장이라 결론짓고는 영국 수렵화와 해양화로 작업 반경을 넓힌다.

    영국 경매장서 페레니의 그림은 날개 돋친 듯 팔린다. 산업혁명으로 졸부가 된 기업가들은 뼈대 있는 집안처럼 보이기 위해 옛 그림으로 대저택을 채우고 싶어 했다. 영국 역사를 동경하는 미국인 여행객들이 경매에서 추정가보다 3배 높게 값을 올려 낙찰받곤 했다. 엄청난 돈을 벌어 런던 교외에 집까지 사들이려는 찰나 행운의 여신이 등을 돌리기 시작한다. 판매 실무를 맡았던 오랜 동업자가 에이즈로 숨진다. 아무리 큰돈을 벌어도 '진짜 예술가'는 아니라는 생각에 삶은 허망했다. 설상가상으로 히드의 '브라질의 보배' 연작을 한 점 더 그려 소더비에 파는 과정에서 소더비 관계자의 의혹을 사게 되고 다시 FBI의 수사가 시작된다.

    5년에 걸친 수사 결과 페레니는 감옥에 가게 되었을까? 궁금하다면 책을 읽어보시길 바란다. 결말을 밝히지 않는 것이 추리소설처럼 박진감 있게 읽히는 이 책에 대한 예의인 것 같다. 원제는 'Caveat Emptor'. 라틴어로 '구매자 위험부담 원칙'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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