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덕의 종횡무진 인문학] 세운상가, 서울의 첫 주상복합이라고?

  • 김시덕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교수

    입력 : 2018.04.13 23:55

    '가장 도시적인 삶'

    김시덕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교수
    김시덕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교수
    건축가 황두진이 '가장 도시적인 삶'(반비)을 출간하기 한 해 전인 2016년에 '1000만 도시' 서울의 사대문 안에 사는 주민은 28만명에 불과했다. 서울 사대문 안은 어떤 시민의 직장이나 학교가 존재하는 공간일 수는 있어도, 그들이 가족과 밥 먹고 잠자는 삶의 필수적인 공간은 더 이상 아니다.

    그러나 서울 시민이나 서울 바깥에 사는 한국인, 나아가 외국인들에게 '서울'이라고 하면 무엇을 떠올리느냐고 묻는다면 그들은 대부분 한양도성과 그 안의 궁궐, 한옥을 떠올릴 터이다. 최근에 강남과 홍대 앞이 주목받고 있지만 이들 지역이 '서울'을 대표하는 데에 심리적인 반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 조선시대 한양의 역사가 이어지는 사대문 안이야말로 서울의 핵심이라는 믿음이다.

    이처럼 서울에 대한 현실과 인식 사이에 괴리가 커지면서 현실에 존재하는 것들의 가치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그 가운데 하나가 서대문구 가좌동의 좌원상가아파트다. 건축물대장을 보면 이 주상복합 건물은 1966년 12월 23일에 사용 승인을 받았다. 이 기록을 믿는다면 좌원상가아파트는 한국 주상복합 건축의 시조라 일컬어지는 세운상가보다도 오래되었다.

    '가장 도시적인 삶'

    결코 화려하지 않은 모습으로 사대문 바깥에 서 있는 좌원상가아파트가 한국 최초의 주상복합 건축일 수 있다는 가능성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불쾌함을 줄지도 모른다. 한국 최초의 주상복합 건축이 서울 사대문 안 한복판에 자리한 유명 건축가의 작품이기를 바라는 이들도 적지 않을 터이다. 그러나 황두진은 이렇게 말한다. '최초'라는 타이틀의 무게를 감안할 때 최초의 주상복합 건축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연구가 필요하고, 적어도 세운상가에 부여한 '최초'라는 타이틀에는 신중해야 한다고.

    기존의 상식에 대한 황두진의 이러한 문제 제기는 현재 한국인 대부분이 살고 있는 도시에 어떤 주거 양식이 알맞은지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대문 안'만 서울이었던 조선 시대나 단독주택이 자연 속에 흩어져 있는 농어촌의 주거 양식은 현대 한국에는 더 이상 적합하지 않다는 문제의식. 그 과정에서 황두진은 수십년 전에 일찍이 자신과 같은 고민을 한 익명의 건축가들이 상가아파트를 만들어 냈음을 발견했다. 상가아파트는 이미 우리에게 와 있었으나 우리가 그 가치를 알지 못한 '오래된 미래'였다.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