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진족 제압한 기마병… 왜군엔 통하지 않은 까닭

    입력 : 2018.04.20 22:56

    '병서, 조선을 말하다'
    병서, 조선을 말하다|최형국 지음|인물과사상사|360쪽|1만6000원

    1592년 4월 13일 부산 가덕도에서 봉수가 올랐다. "왜선 90여 척이 부산포로 향하고 있다"는 보고였다. 조선 조정은 가끔 있었던 국지적 도발로 오판했다. 조선군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신립은 충주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치고 기병전을 펼쳤다. 북방 여진족에게는 통했던 전술이다. 그러나 조총 사격에 이어 근접 백병전을 펼치는 일본군에는 취약했다.

    조선군은 명군의 '절강병법'을 받아들인다. 왜검보다 길고 무거운 장도(長刀)를 든 12명 보병 부대가 한 쌍의 원앙처럼 서로 의지해 전투를 펼치는 전술이다. 명군은 평양 탈환 전투에서 원앙진법으로 일본군을 제압했다. 이 전법은 명 장수 척계광이 쓴 '기효신서'를 바탕으로 했다. 조선은 이후 화약 무기를 체계화한 '신기비결'을 편찬한다. 조총을 받아들이고 대포를 이용하는 전술을 담았다.

    병서(兵書)를 통해 조선 500년 역사를 서술한다. 정도전이 쓴 '진법', 세종 시대 편찬한 전쟁 역사서 '역대병요', 병자호란 후 군사 지침으로 삼은 '연기신편', 정조시대 군사 교범 '병학지남', 대한제국 훈련 교범 '보병조전' 등을 아우르며 전쟁과 혼란으로 가득한 조선 시대 통사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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