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경의 일상시화] 때론 멈추는 용기가 필요해

  • 유희경 시인·시집서점 주인

    입력 : 2018.05.04 23:40

    오규원 시집 '두두'

    유희경 시인·시집서점 주인
    유희경 시인·시집서점 주인
    한 학기 동안 광주광역시에 있는 대학으로 출강하게 됐다. 나는 서울에 살고 있으니 덕분에 매주 기차 여행을 하게 된 셈이다. 이제는 흔한 일인데도, 기차를 타게 된다는 것은 여전히 설레는 일이다. 기왕이면 창가 자리를 원한다. 동일한 리듬으로 흔들리는 기차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만사를 잊게 하는 즐거움을 준다.

    그러나 고속열차는 조용하고 빠르다. 풍경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여행을 만끽할 틈도 없이 도착한다. 바쁜 마음이 되면서도, 조금 느리게 가주면 안 되나 아쉬울 때가 많다. 때마침 새마을호 퇴역 소식을 들었다. 칙칙폭폭, 소리를 내는 증기기관차가 사라졌을 당시 사람들의 기분이 이랬을까 싶게 섭섭하다. 그러고 보니 시 읽기와 닮은 점도 많구나. 무엇이든 효율적이어야 하는 세상에서 시 읽기는 어떤가. 쉽게 질러갈 수 있는 길을 버리고 멀리 돌아가는 흙길마냥 불편하고 느린 것이 아니겠는가. 그 길로 접어들면 생각을 하게 되고 꽃을 보게 되고 때론 콧노래를 흥얼거릴 수 있게 된다.

    오규원 시인의 시집 '두두'(문학과지성사)를 꺼내 펼친다. 2007년 세상을 떠난 오규원은 위대한 시인이었고, 뛰어난 시 이론가였으며, 존경받는 교육자였다. 그의 시는 생명들의 삶을, 살아 있음의 현상을 치장 없는 언어로 들여다본다. '두두'는 그의 유고 시집이다. 여기서 두두는 '두두시도(頭頭是道) 물물전진(物物全眞)'이라는 선가의 말에서 빌려온 것으로, 모든 존재 하나하나가 도이며 사물 하나하나가 모두 진리라는 의미다.

    오규원 시집 '두두'
    수록시 49편은 모두 짧고 간명하다. 그러나 그 울림은 깊고 커다랗다. "잎이 가지를 떠난다 하늘이/ 그 자리를 허공에 맡긴다" '나무와 허공'이라는 시 전문이다. 하늘이 허공에 맡긴 빈 가지에서 느끼는 존재와 존재하지 않음과 쓸쓸함과 체념에서 오는 익숙함. 더 많은 말이 필요할까. 두 행만으로 이미 충분하지 않은가. 이 시들은 오래도록 바라본 자의 것이다. 천천히 걸어 오래 바라보며 하나하나 세어보듯 읽어낸 자만이 쓸 수 있는, 느린 걸음으로 오는 시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 태어난 것들에게 자꾸 눈이 간다. 그럴 때 걸음을 늦추고 때론 멈추는 용기가 내게 필요하다는 것을 알겠다. "어제 밤하늘에 가서 별이 되어 반짝이다가/ 슬그머니 제자리로 돌아오는 돌들이/ 늦은 아침잠에 단단하게 들어 있네/ 봄날 하고도 발끝마다 따스한/ 햇볕 묻어나는 아침"('봄날과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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