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스타코비치 '죽은자들의 도시를 위한 교향곡'

  • 뉴시스

    입력 : 2018.05.09 17:30

    '죽은 자들의 도시를 위한 교향곡'
    1941년 9월 아돌프 히틀러(1889~1945)의 독일 국방군이 작곡가 쇼스타코비치(1906~1975)가 나고 자란 도시 레닌그라드를 포위했다. 서양 역사상 가장 길고 가장 파괴적인 포위전의 시작이다.

    2년 반 동안 폭격과 굶주림 그리고 추위로 100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죽었다. 생존자들은 죽은 자들을 파묻을 수단도 기력도 없어 혹한의 거리에는 시체들이 방치돼 있었다.

    당시 쇼스타코비치는 나치와 소비에트 독재로부터 2중 압박을 받았다. 특히 1936년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을 스탈린이 '음악은 없고 혼란뿐'이라고 혹평하자 순식간에 추락했다.

    숙청의 공포에서 쇼스타코비치는 '교향곡 5번'을 작곡했다. '정당한 비판에 대한 소비에트 예술가의 실제적이고 창조적인 응답'이라는 평을 받으며 가까스로 당의 신뢰를 회복했다. 그러나 스탈린 독재는 쇼스타코비치에게 자유로운 영혼을 짓누르는 유령 같은 존재였다. 그럼에도 끝내 조국을 떠나지 않은 쇼스타코비치는 1941년 '교향곡 7번' 작곡에 들어간다.독일의 포위 공격으로 초토화된 레닌그라드 시민들을 고무하고 단결시키고 찬양하고 추모하는 곡이었다. 1942년 3월5일 쿠이비셰프에서 사무일 사모수트(1918∼1936)가 지휘하는 볼쇼이 극장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이 곡이 초연되자 소비에트 당국은 반 나치 투쟁의 찬가로 치켜세운다.

    쇼스타코비치가 곡에 담은 것에 대한 의견은 여전히 분분하다. 나치에 대한 저항인지, 수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독재자 스탈린에 대한 저항인지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쇼스타코비치가 먼저 떠난 이들과 살아남은 이들에게 곡을 헌정했다는 것만큼은 이견의 여지가 없다. '교향곡 7번'은 마이크로필름에 담겨 중동과 북아프리카 사막을 넘어 미국에 전달돼 연주됐다. 연합군의 동맹을 강화하는데 기여했다.

    그리고 마침내 1942년 8월9일 레닌그라드에서 처음으로 시민들 앞에서 '교향곡 7번'이 연주된다. 전쟁으로 절반 넘게 죽고 뿔뿔이 흩어졌던 레닌그라드 라디오 오케스트라의 살아남은 단원들과 여러 연주자들이 모였고, 카를 엘리아스베르크가 지휘봉을 들었다. 1944년 1월 27일 레닌그라드는 마침내 나치의 손아귀에서 해방된다.

    '죽은 자들의 도시를 위한 교향곡'은 20세기 전반기 소비에트 사회·예술을 다룬 역사서이자 제2차 세계대전 이야기다. 동시에 쇼스타코비치의 간략한 전기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인간의 본성이 시험받는 혹독한 상황에서 음악을 통해 현실을 견디고 서로를 위로하고 승리의 희망을 품은 이야기다. 상반된 체제의 사람들이 음악으로 서로 이해하고 연대를 맺는 이야기다.

    쇼스타코비치는 죽기 전에 말했다. "내 교향곡은 대부분이 묘비다." 달리 말하면 세상을 떠난 모든 자들을 위한 웅장한 위로가다. M T 앤더슨 지음, 장호연 옮김, 546쪽,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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