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레터] 혁명, 반혁명, 불혁명

    입력 : 2018.05.19 00:04

    이한수 Books팀장
    이한수 Books팀장
    일본 센다이 도호쿠대학에 일부러 찾아간 적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조선일보 마지막 학예부장(현 문화부장)이자 '바다와 나비'의 시인인 김기림(1908~?)의 흔적을 찾으러 간 길이었지요. 김기림은 1930년대 후반 이 대학 영문과에 유학했습니다. 대학 직원은 "개인정보법 강화로 학적부는 보여줄 수 없다"면서도 일부 내용을 적어 건넸습니다. '특히 문필에 장기가 있음'….

    캠퍼스를 둘러보다 문필가 또 한 사람의 자취를 찾았습니다. 중국 근대 문학가 루쉰(魯迅·1881~1936). 그는 도호쿠대학 전신인 센다이의학전문학교에서 공부했습니다. 캠퍼스에 기념전시실이 있습니다. 인근 주택가에서 '루쉰이 하숙한 곳'이란 표지판도 보았습니다. 동양 3국이 센다이에서 기묘하게 만나고 있었습니다.

    최근 집 정리를 하다가 어느 책 여백에 옮겨 적은 루쉰의 글을 발견했습니다. '혁명자는 반혁명자에게 죽는다. 반혁명자는 혁명자에게 죽는다. 불혁명자는 혁명자로 간주되어서 반혁명자에게 죽든가, 반혁명자로 간주되어서 혁명자에게 죽든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겨져서 혁명자 또는 반혁명자에게 죽는다.'

    '루쉰 전집'
    30년 전 대학생 때 적은 것인데 출처를 루쉰의 '소잡감(小雜感)'이라 썼더군요. 이 글을 읽으니 루쉰이 더 오래 살았다면 '혁명' 또는 '반혁명'에 희생됐을 것이란 생각이 드네요.

    '루쉰 전집'(전 20권·그린비)이 나왔다는 소식에 옛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연구자 12명이 11년에 걸쳐 번역한 노작(勞作)입니다. 전체 1만3444쪽 중 앞에 인용한 '소잡감'은 어디쯤 있을까요. 문득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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